오늘이 여덟번째로 승진에서 떨어진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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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운동 에세이/에세이

오늘이 여덟번째로 승진에서 떨어진 날입니다.

by Squat Lee 2023. 12. 26.

벌써 여덟번째 입니다. 마지막으로 진급을 한 기억이 머리속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내 동기들은 이미 진급을 모두 했고, 이제 저만 남았습니다. 이제 후배들이 하나 둘 치고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평소보다 빠른 진급 발표에 살짝 당황했지만, 얼굴에서 그런 기색은 애써 숨기며 태연한 척 합니다.

 

모두들 저에게 와서 등이나 어깨를 토닥이며, 저보다 더 아쉬운 표정을 짓습니다.

 

거짓말 같지만 저는 정말 아무렇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에 그 무엇보다 기쁘고, 행복한 일이 있었기에 승진 따위는 제 머리속에서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냐구요? 전후 사정을 알아야 공감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잠시만 제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18년 전 더운 여름에 정장을 잘 차려입은 남녀들이 허리를 곧게펴고 앉아 있었습니다. 면접자 대기실입니다. 그 순간 한 남자가 반팔셔츠를 입고 땀을 닦으며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모두들 그 남자가 지원자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반팔셔츠 남자의 이름이 호명되고 면접장소로 이동합니다. 15명 쯤 되는 면접관이 이 남자를 유심히 쳐다 봅니다. 

 

전공 질문으로 면접은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아쉽게 이 회사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 생각할때 쯤 이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대학생 때 노점상을 한 얘기, 전 직장에서 미국GM사와 미국에서 회의하다 졸았던 얘기 등을 찬찬히 합니다. 분위기가 바뀌였습니다.

 

이제 모두가 이 남자를 집중합니다. 기존에 정해진 면접시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면접관 모두가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질문을 이어갑니다.

 

마침내 면접이 끝나고, 바로 다음날 이 남자는 전화로 합격 통보를 받습니다. 

 

 

출근 첫 날 처음 보는 직원분이 그 남자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그 남자 즉, 저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비단 이 분만이 아니었습니다.

 

출근 전 부터 저의 면접 이야기는 회사 전체로 퍼졌고, 기대감도 같이 올라갔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얘기처럼 저의 회사생활은 '탄탄대로'였습니다. 일에서 인정받고, 회식자리에서도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팀장이 바뀌었습니다. 팀장과는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해가 지나갈수록 감정의 골만 깊어졌습니다.

 

일은 산더미처럼 맡게되고, 평가는 항상 바닥을 깔았습니다. 힘들고 억울했지만 견뎠습니다.

 

인도 속담에 "누가 너에게 욕을 하거든 맞서지 말고 기다려라. 잠시 후 그의 시체가 강가에 떠내려 가는 것을 볼 것이다."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제가 싫어 하는 사람은 남들도 싫어 하는 법. 결국 그 팀장은 본인의 화를 못 이겨서 스스로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이제 저에게 꽃 길이 펼쳐 질거라 예상했지만, 인생은 생각대로 가지 않더라구요.

 

 

그 다음 팀장은 저에 관한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친해졌지만, 처음 몇 년간은 저를 괴롭히려고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점심시간을 Full로 채워서 저를 혼내거나, 작은 일로 트집을 잡은적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메일을 보내면 "왜 말도 안하고 맘대로 보내냐?"라고 혼내고, 보내기 전 애기하면 "니가 짬이 얼만데 이런 것도 확인받고 보내냐?"라는 식으로 하루하루 피를 말렸습니다.

 

더 견디기 힘든건 사람들 앞에서 저에게 소리지르고 윽박을 지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상황에 익숙해지고 점점 제가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이번 팀장도 바뀌었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높은신 분이 제 위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 분과 우리 본부장은 제가 우리 회사에 대한 희망을 버리게 만드신 분들입니다.

 

이제 승진은 체념하고, 다른 곳에 눈을 돌렸습니다.

 

블로그를 해보고,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주식투자 프로그램도 만들었습니다. 

 

아직 가시적으로 성과가 나온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삶에 희망이 전혀 없겠다는 생각에 이거라도 붙잡고 있습니다.

 

다시 오늘 아침일로 돌아 가겠습니다.

 

어제 눈이 많이 와서 아침에 아들을 학교까지 차로 태워다 주었습니다.

 

조수석에 앉은 아들은 한참동안 운전하는 저를 쳐다 봤습니다. 신호 대기로 차가 잠시 멈출때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부릅니다. 

 

내가 고개를 돌려 아들과 눈을 마주친 순간 뜬금없이 "아빠는 천재 같아요."라고 하는 겁니다.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중학교 1학년 눈에 비춰진 아빠가 대단 하다는 얘기 같았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세상사람 아무도 저를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우리 아들은 아빠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오늘이 승진에서 8년째 떨어진 날입니다.

 

아쉽거나 억울한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제 아들이 저를 인정해 주었으니 이제 그 누구의 인정 따위도 제게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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