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혁명 이래 인간 사회는 점점 더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 졌습니다.
지구에는 얼마나 많은 인간 세상들이 공존했을까요? 기원전 10,000년경 우리 행성에 이 숫자는 수 천개 였습니다. 기원전 2,000년이 되자 숫자는 수백 개, 많아야 2천 ~ 3천개 정도로 줄었습니다. 기원후 1,450년이 되자 그 숫자는 그보다 더 극적으로 줄었습니다. 유럽인이 세계 탐사 직전인 그 시기에 지구에는 태즈메니아 같은 고립된 작은 세계가 상당히 많이 존재했지만, 90퍼센트에 가까운 인류는 아프로아시아 세상이라는 단 하나의 큰 세상에 살았습니다. 나머지 10분의 1에 해당하는 인류는 상당한 규모와 복잡성을 지난 네 개의 세계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3백 년간 아프로아시아 거인은 세계의 나머지 지역 전부를 집어 삼켰습니다. 1521년에는 스페인들이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고, 안데스 세계는 스페인의 잉카 정복으로 1532년 붕괴 되었습니다. 유럽인이 처음 호주에 상륙한 것은 1606년이었고, 영국은 1788년 식민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15년 뒤에 영국인들은 태즈메니아에 첫 정착지를 건설함으로써 최후까지 남아있던 독자적 인산 세계를 아프로아시아의 영향권에 편입 시켰습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인류는 동일한 지정학 체계, 동일한 경제 체계, 동일한 법 체계, 동일한 과학체계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첫 밀레니엄 동안, 보편적 질서가 될 잠재력이 있는 후보 세가지가 출현했습니다. 세 후보 중 하나를 믿는 사람들은 처음으로 세계 전체와 인류 전체를 하나의 법 체계로 통치되는 하나의 단위로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인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 질서였으며, 두 번째 보편적인 질서는 증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 였으며,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 질서였습니다.
돈의 질서
농업혁명이 시작되었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고 친밀한 공동체에서 계속 살았기 때문에 수렵채집인의 무리와 비슷하게 자급자족하는 경제단위였습니다. 도시의 왕국이 등장하고 수송 하부구조가 개선되자 전문화라는 새로운 기회가 생겼습니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는 제화공과 의사 뿐아니라 사제, 군인, 법률가를 풀타임으로 고용했습니다.
수많은 낯선 사람들이 협력하려 할 때는 호의와 의무의 경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습니다. 또한 물물교환 경제에서 제화공과 사과 과수원 주인은 수십 종 재화의 상대가격을 매일매일 새로 알아야 합니다. 만일 1백 종의 각기 다른 상품을 시장에서 거래된다면, 구매자와 판매자는 4,950가지 서로 다른 교환율을 알아야 하며, 상품이 1천 종이라면 49만 9,500가지 서로다른 교환율을 곡예하듯 다뤄야 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거래가 이루어 지려면 쌍방이 상대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옛 소련은 중앙에서 물품을 다 받아서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분배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실패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는 많은 수의 전문가를 연결시키는 좀 더 쉬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돈을 개발한 것입니다.
화폐는 정신적 혁명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공유하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새로운 상호 주관적 실체였습니다. 별보배고둥 껍데기는 아프리카, 남아시아,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전역에서 약 4천 년간 화폐로 쓰였으며, 20세기 초 영국령 우간다에서는 별보배고둥 껍대기로 세금을 납부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현대의 교도소나 전쟁포로 수용소에서는 담배가 돈의 역할을 한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복잡한 상업 체계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모종의 화폐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돈은 거의 모든 것을 다른 거의 모든 것으로 바꿀 수 있게 해주는 보편적인 교환수단입니다.
이런 신뢰(돈)를 창조한 것은 정치, 사회, 경제적 관계의 매우 복잡하고 장기적인 네트워크 입니다. 이것들을 신뢰하는 이유는 이웃들이 신뢰하고 왕 역시 그것을 믿고 세금으로 받기 때문이며, 사제 또한 그것을 믿고 십일조로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신앙에 동의할 수 없는 기독교인과 무슬림 사이에서도 돈에대한 믿음에 관해서는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제국
인류의 통합을 순수하게 경제적인 과정으로만 보아서는 결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기원정 200년경 이래로 인간은 대부분 제국에 속해 살았습니다. 미래에도 대부분 하나의 제국 안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이번 제국은 진정으로 세계적일 것입니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이라느 환상이 실현될지 모릅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는 좋든 싫든 제국의 토대위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제국도 마침내 무너지지만, 대체로 풍성하고 지속적인 유산을 남깁니다. 21세기를 사는 거의 모든 사람은 어디가 되었든 제국의 후예입니다.
제국이란 정치질서는 두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닙니다. 첫째, 상당히 많은 숫자의 다른 민족이나 국민을 지배해야 하고, 둘째, 자신의 기본 구조와 정체성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갈수록 더 많은 국가와 영토를 집어삼키고 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런 두가지 특징 덕분에 제국은 다양한 소수민족과 생태적 지역들을 하나의 정치 체제하에 묶어낼 수 있었고, 그럼으로 로써 인류와 지구에서 점점 더 큰 부분을 하나로 융합했습니다.
오늘날 '제국주의자'라는 말은 거의 최고의 정치적 욕설입니다. 역사를 좋은 편과 나쁜편으로 깔끔하게 나누고 모든 제국은 나쁜 편에 속한다고 분류하고픈 유혹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거의 모든 제국은 유혈사태 위에 세워졌고 압제와 전쟁으로 권력을 유지한 것이 아닌가요? 하지만 오늘날의 문화 대부분은 제국의 유산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제국이 정의상 나쁜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요?
문화유산이라는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정말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길을 택하든 그 첫걸음은 딜레마가 복잡하다나는 것을 받아들이고, 과거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선인과 악당으로 나누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종교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충돌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체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보편적이고 선교적인 종교는 기원전 1000년에 와서야 비로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출현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의 하나였고, 보편적 제국과 보편적 화폐의 등장과 매우 비슷한게 인류의 통일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왕국과 교역망이 확대되자, 왕국 전체나 교역 지대 전체를 아우르는 권력과 권위를 지닌 존재들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런 수요는 다신교의 출현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신교는 여기저기서 다양한 일신교를 잉태했으나, 이런 종교들은 주변부에 남아 있었습니다. 비약적 돌파구는 기독교와 함께 왔습니다. 일신론자들은 다신론자들에 비해 훨씬 더 광신적이었고, 전도에 헌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난 2천년간 일신론자들은 모든 경쟁상대를 폭력으로 말살시킴으로써 자신들의 힘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되풀이했습니다.
역사를 배우는 자세
역사는 결정론으로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도 없습니다. 역사는 카오스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들 간의상호작용은 너무 복잡하므로, 힘의 크기나 상호작용 방식이 극히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에는 막대한 차이가 생깁니다. 역사는 이른바 2단계 카우스계입니다.
그러면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요?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진화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합니다. 그리고 개별 인간은 너무나 무지하고 약해서, 대개는 역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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