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윤재수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지금 일어나는 일이 예전에도 비슷하게 일어났고, 해법을 안다면 난관을 헤쳐나가기 좀 더 수월할 것이다.
1971년 ~ 1980년
닉슨 대통령의 금본위제 폐지 결정으로 외자유치가 어려워지자 기업들의 사채의존도가 높아져 갔다. 이에 정보는 1972년 8월 3일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발동해 사채를 동결하고, 금리를 인하하는 조치를 취했다.
8.3 사채동결로 경기가 회복되었지만, 1973년 7월 1차 오일쇼크, 같은해 10월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1974년 소비자물자상승률 26.4%, 경제성장률은 1973년 12.3%에서 1974년 7.7%로 하락했다. 주가지수도 25% 후퇴했다. OPEC이 원유가격을 인생하여 1년간 유가는 215% 급등했고, 경기침체속에 물가가 오르는 스테그플레이션에 빠졌다.
원유가격이 오름으로 원유판매 수입이 늘어나자 사우디, 이란, 이라크 등의 중동국가들이 기간산업 건설에 나서기 시작했다. 1973년 삼환기업이 중동진출의 물꼬를 튼 뒤 1978년에는 중동 계약고가 79억 달러에 이르러 해외건설의 98%를 차지한다.
건설업종 지수는 1975년 부터 1978년까지 해마다 97%씩 급등했고, 삼환기업의 주가는 1974년 11월3860원에서 1978년 6월 82,950원을 기록했다. 결국 1978년 7월말 건설주의 거품은 터져서 대부분의 부실건설주는 10분의 1토막이 나거나 부도가 났다.
건설주 파동의 3가지 원인
첫째, 지나친 주가 상승으로 버블이 심했다.
둘째, 지나친 물량공급(유무상증자)으로 수급이 무너졌다.
셋째, 2차 오일쇼크로 기업실적이 둔화 되었다.
1981년 ~ 1990년
1980년 1월 4일 기준 시가총액을 100포인트로 1984년 1월 4일부터 코스피지수가 발표.
국회의원과 안기부 차장을 지낸 이철희씨의 부인인 장영자씨가 건설주를 매수해 1981년 초 94포인트였던 건설업종지수가 7월 321포인트까지 급등하였다. 하지면 곧이어 급락을 하게된다.
1984년 7월 삼환기업이 북예멘 정유공장 건설에 참여한다는 정보가 퍼지면서 선경, 유공, 삼환기업, 현대종합상사 등 자원개발주가 급등했다. 자원개발주는 유가가 급등하면 증시의 주도주로 등장했다가 유가가 안정되면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1985년 9월은 저금리, 전환율, 저유가를 배경으로 국제수지가 큰폭으로 흑자를 내기시작했다.
1985년 초 139포인트에서 1989년 4월 코스피 지수는 1,007포인트에 도달하며, 4년 3개월동안 7.2배 상승했다. 상승배경은 2차 오일쇼크 이후 석유소비가 감소하여 유가가 하락하고, 국제금리가 하락하였다. 또한 일본의 엔화가치를 높이는 플라자합의로 인해 상대적으로 한국의 원화가치가 하락하여 수출경쟁력이 높아졌다.
1980년대 대세상승 주도주는 금융주, 건설주, 무역주다. 특히나 증권회사들이 1986년부터 2~3배의 이익증가율을 보이자 금융주가 급상승 했다.
대세상승장은 1989년 4월 1일 1,007포인트를 직고 하락세로 전환하자 정부의 수차례 걸친 증시부양책에도 불구하고 1992년 8월에는 456포인트까지 떨어졌다.
3년만에 반토막난 코스피지수, 하락원인 3가지
- 거품의 소멸
- 1988년 거래소시장의 PER은 26배로 선진국 11~15배 보다 지나치게 높은 편이다. 특히 증권과 은행업종은 PER이 50배였고, 금융, 건설, 무역업종 중에는 100배가 넘는 기업이 수두룩했다.
- 경사수지 적자전환
- 88올림픽이 끝난이후 3저가 퇴조하면서 GDP 성장률도 한 자릿수로 내려왔다. 1990년에는 20억달러 적자를 내고 말았다. 세계경제가 불황으로 접어들고, 국내경기도 나빠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인상과 부동산가격의 상승으로 물가는 올라가기만 했다.(-> 2019년과 비슷한 상황)
- 주식 과익공급으로 수급 균형 붕괴
- 주식 공급물량은 1986년 1조 -> 1988년 14조원에 이르렀으며, 1988년 시가총액이 64조인 점을 감안하면 과다하게 공급되었다.
- 1989년 1월 ~8월까지 공모주 청약을 실시한 77개사 중 73개사가 공개전에 평균 115%의 유무상증자를 실시하여 자본금을 뻥튀기 함.
- 증권회사는 해마다 1~2차례 유무상증자와 우선주 발행을 남발
정부의 증시 부양책
- 1차 증시부양책 - 12.12 증시안정화 조치
- 1989년 12월 12일 노태우정부가 발표한 증시 부양책
- 주식매입 자금 무제한 특별융자를 조건으로 대한, 한국, 국민투신등 3대 투신이 주식을 적극매입
- 대주주, 외국인 매도. 부양책 실패. 3대투신 부실, 증권회사에 흡수 합병.
- 2차 증시 부양책 - 증시안정기금
- 1990년 5월 8일 증시안정기금 설립 발표
- 32개 증권사와 은행, 상장기업 등 636개사가 4조 8,600억원을 출자해 설립
1991년 ~ 2000년
1992년 1월부터 외국인 직접 주식투자가 허용되었다. 외국인은 PER을 기준으로 투자하였다.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실시로 약 보름간 8.9%인 65포인트 주가하락이 있었지만, 가,차명 계좌는 시가총액의 2%에 불가하여 15일만에 회복했다.
1997년 12월 IMF 외환위기
- 1994년 11월 1,145포인트를 기록한 종합주가지수는 1997년 12월에는 340포인트까지 추락
-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 철폐로 800~900원인 환율이 1998년 1월 2000원이 되고, 금리도 30%에 이르렀다.
- 1998년에는 277포인트까지 폭락
- 1998년 말까지 760개 상장종목 중 35개사 퇴출, 133개 사 관리종목에 편입
- 외부 차입금에 의존한 문어발식 기업확장, 과도한 단기외채, 정부의 경직된 환율정책, 동남아 금융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환율이 1300~1600원이 되자 채산성이 높아져 경상수지가 1998년 403억달러 대규모 흑자. 삼성전자 1999년 당기순이익이 전년도 비해 9배나 증가하였다. 155조원의 공적자금을 조성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정리. 1998년 8월을 기점으로 추가하락이 멈춤.
1996년 7월에 코스닥 시장이 개설. 코스닥에 등록된 기업은 법인세 50%를 5년간 감면해주는 등 벤처기업 지원책이 생겼음. 상승률이 더딘 거래소에서 코스닥으로 투자자가 대거 이동함. 2000년 3월 나스닥시장이 하락으로 전환하자 코스닥도 급락함. 코스닥 하락률 99%. 마구잡이 기업공개, 과다한 유상증자로 주가폭락.
2001년 ~ 2010년
2000년대에는 EPS가 주요 투자지표로 활용되었으며, 가치투자와 장기투자가 투자의 기준으로 자리를 잡았다. 역사적인 저금리로 경기가 활황을 보여 세계증시가 동반 상승하였으며, 2007년에는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를 돌파하였다.
2001년 911테러로 540포인트에서 10일 후 473포인트로 14.2% 하락함. 역사속 대형사건과 증권관계를 살펴보면 사건발생 뒤 5~20일간 주가가 하락 한 뒤 상승으로 돌아서는 패턴을 보임. 사건발생 이전 수준까지 반등하는 데는 10일 ~ 1개월 정도가 소요됨
사건 |
하락률 |
회복기간 |
비고 |
1979년 10.26사태 |
9.5 |
12일 |
박대통령 시해 |
1980년 5.18 광주항쟁 |
4.8 |
14일 |
광주 민주화운동 |
1982년 장영자 사건 |
9 |
10일 |
거액 어금사기 사건 |
1990년 페르시아만 사태 |
17.5 |
30일 |
이라크 대공습으로 국제유가 164% 급등 |
1993년 금융실명제 실시 |
9.4 |
7일 |
문민정부 실명제 실시발표 |
2001년 9.11테러 |
14.2 |
30일 |
|
이에 반해 IMF,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처럼 경제에 치명타를 주는 사건은 주가하락이 크고, 회복기간도 길다.
사건 |
주가하락시기 |
코스피 하락률 |
하락기간 회복기간 |
정부정책 |
IMF |
1994.11~1998.6 |
-75% |
3.8년 1.6년 |
부실기업 퇴출 금융구조조정 금리,환율,외국인 투자 자율화 |
IT버블붕괴 |
2000.1~2000.9 |
-56% |
1.9년 1.3년 |
카드와 부동산 위주의 내수부양책 |
신용카드대란 |
2002.4~2003.3 |
-45% |
1년 1년 |
카드버블 붕괴수습, 개입자제 |
미국발금융위기 |
2007.10~2008.10 |
-55% |
1년 2년 |
세금감면, 부동산규제 완화, 유동성공급, 기관자본 확충 |
주가가 바닥임을 알리는 신호
- 각종 언론매체에서 어두운 경제전망 연일 주요뉴스로 다룬다
- '최악의 경기', 'GDP성장률 큰 폭 하락', '기업부도설 난무','수출시장 먹구름','소비심리 실종'과 같은 제목이 톱기사로 등장
- 주가하락에 대한 기사가 톱뉴스로 다뤄지며, '주가최대폭락', '투자자들 증시이탈 심각' 등이 등이 톱으로 등장
- 정부가 추락하는 증시를 붙잡기 위해 금리인하, 증권투자 세제지원, 증시에 자금공급 등의 조치를 누적해서 발표
- 국내외 증권전문가가 증시를 어둡게 전망하고, 주가의 추가하락을 예견. 특히 외국의 투자기관이 한국의 주가전망 목표치를 낮추고 한국증시에서 탈출할 것을 권고
- 펀드환매가 일어나고 펀드매니저가 증시전망을 비관적으로보고 주식비중을 낮춘다.
- 추가하락에 대한 두려움으로 투매가 일어나고 신용계좌는 담보부족으로 연일 반대매매가 이어진다.
- 깡통계좌가 속출한다가는 뉴스가 보도
2009년 한해 88% 급등. 주가 상승 원인은
- 정부가 금융기관에 직접 자금을 공급하거나 은행에 지급보증을 한느 등 미국을 비론한 세계 각국이 같은방향으로 공조하며 재정정책을 편 결과 최악의 유동성 위기를 넘기고 각국의 GDP 성장률이 상승으로 돌아섰다.
- 금리를 대폭인하. 미국 5.25%->0.00~0.25% 영국 5%->0.5% 한국 5.25%->2% 일본 0.5%->0.1% 중국 7.5%->5.58%
- 주가가 기업가치 이하로 하락
- 유가급락(2008년 147달러 서부텍사스산 원유가 67달러 수준으로 54% 하락)
- 지수가 단기에 하락해 낙폭이 심해지자 매물공백이 발생. 코스피지수는 10월 한달동안 1,453 포인트에서 892포인트로 38.6% 하락했고 신용매물은 반대매매를 당해 급매물이 사라졌다.
- 한국증시가 2009년 9월 21일 세계적인 투자지표인 FTSE(Financial Times Stock Exchange) 선진국지수에 편입. 100억달라 안팎의 신규 투자자금이 해외로 유입될 것으로 전망
2011년 ~
주식시장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간 장기 횡보국면이 지속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귀기를 극복해 가는 도중에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져 경제회복이 더디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인 테마주와 K팝 관련 테마주도 급등락을 이어갔다. 우선주와 중국특수를 누린 화장품 관련주도 급등하였는데, 이는 외국인과 기관이 주도하였다.
장기 횡보하던 한국증시는 2017년부터 장기박스권을 탈피하고 상승으로 전환되었다. 상승 배경은 2016년 GDP 성장률 3.1%로 잠재성장률을 상회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증기가 2009년부터 상승가도를 달리고 EU, 일본 등 선진국 증시도 상승으로 돌아선 것도 배경이 되었다. 세계증시 상승은 경기회복가 장기 저금리와 유동성 확대에 따른 필연적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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