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 인스타브레인(안데르스 한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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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 인스타브레인(안데르스 한센)

by 대충살아볼까 2022. 10. 5.

책 표지 캡쳐

무슨 일이든 잘 하려고 마음먹고 있으면, 시작조차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책도 적절한 환경에서 컨디션이 좋을때 집중해서 읽으려고 한다면 한 글자도 못읽게 된다. 이해도가 50% 밖에 되지 않더라도 틈틈히 읽다보면 어느새 습관이 되고 읽은 지식이 쌓이게 된다.

 

독서후기도 마찬가지다. 완벽하게 적으려고 책을 2번씩 읽고, 어떻게 후기를 적을지 구성도 고민하기 시작하면 결국 쓰기 싫어진다.

 

일단, 기록을 남기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시작부터 해야겠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보다 어설프지만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책 제목만 보면 IT 기술력을 활용하거나 소개하는 책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스웨덴의 정신과 의사가 적은 책으로 SNS와 휴대폰 사용에 대한 우려를 주제로 한다.

 

작가는 우리의 스마트폰, SNS, 게임등의 사용은 기업에서 우리를 심리를 이용해서 중독 되도록 설계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이런 중독성 있는 물건을 만든 스티브잡스, 마크저크버그, 빌게이츠는 자녀에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가령 페이스 북에 '좋아요'가 울리면 그걸 기대하기 때문에 도파민이 분비되고 중독으로 진행된다는 얘기다.

(도박은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는 게임이다. 인간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도파민이 가장 많이 분비 되도록 진화가 되어 있다. 왜냐하면 예전 원시시대때 불확실한 환경에서도 먹이를 찾아야 살아남을 수 있기에, 도파민은 의욕을 복돋아 주는 역할을 해왔다.)

 

뇌는 '예측 불허'를 사랑한다.

뇌가 보상 시스템을 빈번하게 활성화시키는 것은 돈, 음식, 섹스, 인정 혹은 새로운 경험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이에 대한 기대감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만큼 우리의 보상 센터를 작동시킬 수 잇는 것도 없다. 1930년데에 쥐를 대상으로 지렛대를 누르면 음식이 나오는 실험을 했는데, 이따금 음식이 나올 때 쥐들이 지렛대를 더 많이 누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렛대를 누를 때 음식이 나올 확률이 30%~70%인 경우게 가장 젋가하게 눌렀다.

20~30년 뒤에는 원숭이들에게 벨 소리를 들려준 다음 착즙 주스를 주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원숭이들의 도파민 수준은 벨 소리만 들려도 높아졌으며 심지어 주스를 마셨을 때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다. 이 연구는 도파만이 만족감을 주는 '보상 물질'이 아니라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물질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연구자들은 또한 벨 소리를 들려준 이후 이따금만 주스를 제공했내느데, 그 결과 도파민이 더욱 많이 분비되었다. 벨소리를 들려준 이후 두 번에 한 번꼴로 주스를 제공할 때 도파민 수준이 가장 높았다.

쥐에게서 관찰된 현상이 원숭이에게도 관찰된 것이다.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실험 참가자에게 카드를 주고 뽑게 했는데, 뽑은 카드에 따라 돈을 받을 수도 못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카드와 상관없이 항상 돈을 받을 수 있을 때보다,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불확실할 때 도파민 수치가 훨씬 더 높았다. 그리고 쥐나 원숭이와 마찬가지로 두 번에 한 번꼴로 보상이 주어질 때 도파민이 가장 많이 분비되었다. 뇌의 입장에서는 기대감 속에 미래의 부로학실한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 그 '길(path)' 자체가 목표인 셈이다.

그런데 불확실한 것보다 확실한 것을 더 좋아해야 맞는게 아닐까? 뇌가 불확실한 결과에 더 많은 도파민으로 보상을 하는 이유는 100%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도파민이 가장 중요한 임무가 동기 부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도파민이 마약같은 신경전달 물질로 운동중독을 일으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기부여에 관여한다는 사실은 놀아웠다.

 

이걸 주식투자 관점에서 비춰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타를 치고, High Risk High Return 종목에 매달리는 현상이 이해가 된다. 

 

도파민은 눈앞에 있는 맛있는 것을 먹고 싶게 만들지만, 그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엔도르핀이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에서 도파민이 분비되고, 무언가를 우연히 얻게 되면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도박의 사이클이다.

 

왜 부정적인 감정에 더 끌일까?

부정적인 감정은 긍정적인 감정보다 우세한데, 이는 부정적인 감정이 역사적으로 위협과 연관된 경우기 많았기 때문이다. 위협의 즉각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먹거나 마시거나 자거나 혹은 짝짓기는 나중으로 미룰 수 있어도 위협에 대한 대처는 미룰 수 없다. 이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다. 짐작하건대 우리의 선조가 처했던 주변 환경은 분명 기회보다는 위협이 많았을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어쩌면 더 일반적이었을 수 있다는 점은 대부분의 언어에 긍정적인 감정어보다 부정적인 감정어가 더 많은 이유일 수도 있다. 또한 부정적인 감정은 대부분의 사람이 큰 관심을 보이는 분야이기도 하다. 갈등이나 극적인 사건이 없는 영화나 책을 누가 보려고 하겠는가?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부정적이 사건이 대부분이다. 언론사도 자극적이고 강하게 써야 사람들이 읽으니깐 그렇게 하는 것 같다.

 

문제는 그런 뉴스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간 전쟁, 식량위기, 기후위기, 미국의 자국산업 보호 등 뉴스를 보고 있으면 온 세상이 금방이라도 망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더욱이 나는 불안에 취약한 성격이라 한 가지 뉴스를 보더라도 남들보다 더욱 강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래서 뉴스를 자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같은 성격은 원시시대때 생존에는 유리 했겠지만, 현대 사회를 살기엔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있다.

 

행복은 당연한 게 아니다.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반드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형성한 세계에서는 인구의 절반이 채 10세도 못 채우고 죽었으며 평균 기대 수명은 30세였고 암이나 심혈관계 질환이 아니라 감염, 기아, 살인, 사고, 야생 동물 때문에 사망했다. 그 세계에서는 불안을 느끼고 경게를 늦추지 않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
우리의 선조는 한가로이 걸으면서 모든게 다 좋다고 생각하고, 뱀이며 사자 혹은 자신을 죽이려는 이웃을 못 볼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사방팔방에 존재하는 잠재적이 위험에 집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감정을 '불안'이라고 부른다. 즉 우리의 선조는 평온했다기보다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화재경보 원칙과 감정이 우리의 다양한 행동을 어떻게 조종하는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는 20년 전보다 정말로 더 우울한가'는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자연이 수백만 년동안 우리 안에 암호화하여 심어놓은 고통의 결과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불안한 내 모습이 정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아무런 걱정없이 태평한 사람들을 보면 원시시대에는 이미 죽었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너무나 적응을 잘 한다는 생각이 든다.

 


두렵고, 불안한 감정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내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여부다.

 

사람은 원인이나 이유를 모를때 가장 불안해 하는 것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들거나, 두렵고 불안할 때에는 나 스스로 진화과정에서 생긴 결과라고 위안을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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